극장 광고판도...상영 시간표도...
온통 '어벤저스2'로 뒤덮였습니다.
어벤저스 영웅들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보이는 팬들이 앞다퉈 극장을 찾았고, 마포대교를 막고 촬영하는 등 한국에서 촬영이 진행된 점도 관객들의 관심을 키웠습니다.

[김민정 / 영화 '어벤져스2' 관객]
유명한 배우들이 와서 촬영을 했는데 어떻게 나올지가 너무 궁금했거든요.

[양지원 / 영화 '어벤져스2' 관객]
보통 시험 끝나고 난 다음 본 영화를 주제로 삼아서 애들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요.

어벤저스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개봉 3주만에 1천만 관객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힘이기도 하지만 극장에 볼 영화가 어벤져스 밖에 없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개봉 첫 주 주말인 지난달 25일, 어벤져스는 토요일 하룻동안만 무려 1만 18차례 상영됐습니다.
전국 모든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 회차가 통틀어 1만4천7백여회, '어벤져스2'의 상영 점유율은 68.2%에 달합니다.
열번 중 7번은 '어벤져스2'를 틀었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1천7백만 관객,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명량'만해도 상영 점유율은 개봉 첫주 나흘동안 40%대로 절반을 넘지 않았습니다.
'어벤져스2'의 스크린독식은 그만큼 심했습니다.

[이동연 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자본의 회수를 위해서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해야 하고 한국 관객들의 특성상 영화의 취향들이 한번에 다 쏠리기 때문에 일주일 안에 승부를 걸어야 되는 스크린을 확보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영화를 볼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이상준 / 영화 '어벤져스2' 관객]
액션 영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집사랑이랑 같이 쇼핑도 하고 돌아다니다가 영화를 한 편 보자 그래서 가볍게 왔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없으니까.. 왔으니까 보고 가자 또 그런 분위기 때문에 왔죠 뭐.

이같은 어벤저스 편중 현상은 정작 어벤저스를 만든 미국보다도 심합니다.
지난 5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한 극장 앞.
미국 개봉 나흘째 되는 날이었지만 어벤저스를 걸어놓은 곳은 14개 상영관 가운데 4개 뿐입니다.
나머지 상영관은 7개의 영화가 다양하게 걸려 있습니다.

[카메론 / 관객]
마케팅 예산이 적은 소규모 영화는 경쟁이 어렵죠. 그래도 이런 저 예산 영화도 좋은 게 많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번엔 프랑스로 가봤습니다.
파리 시내의 극장.
역시 어벤저스가 차지한 상영관은 하나뿐입니다.

[쟈크 제르베 / 영화평론가]
전 세계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언어를 말하게 되면 인류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거니까요.

한국 관객들이 유달리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걸까.
우리나라 극장들은, '어벤저스2'의 막강한 경쟁력 때문에 다른 배급사들이 같은 시기에 영화 개봉을 애초에 피했고,
'어벤저스2' 개봉전부터 관객들의 기대가 워낙 컸기 때문에 스크린을 많이 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예매율이 96%로 역대 영화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사전 예매량이 95만장에 이르는 등 유례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예매율이라는 수치는 영화의 인기와 반드시 일치하는 걸까?

어벤저스가 개봉한 4월 23일,
전국 2200개 스크린 중 어벤저스가 차지한 스크린은 1700개 였습니다.
사실상 예매가 가능한 영화가 어벤저스 뿐이었고, 당연히 예매율 수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얘깁니다.

[최광희 / 영화평론가]
세게 밀어주는 영화는 2주 전, 3주 전부터 (예매 싸이트를) 열거든요. 그러니까 예매율이 올라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스크린 수가 적은 영화는 예매도 나중에 오픈을 시키기 때문에 예매율이 낮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러면 개봉 이후의 상황은 어떨까.
극장들은 보통 좌석 점유율을 내세워 상영을 늘릴지 줄일지 결정합니다.
어벤져스 2와 같은 날 개봉했던 영화 '약장수'.
멀리있는 자식보다 함께 놀아주는 장사치가 낫다,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를 챙기지 못하는 요즘의 세태를 잔잔히 담아낸 줄거리로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김금숙 / 영화 '약장수' 관객]
아들이 엄마 집에 왔을 때도 엄마 마음을 읽지 못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이야기만 하다가 떠나버리고 너무나도 마음이 좀 그렇더라구요.

하지만 1주일 만에 멀티플렉스에서 완전히 내렸고, 지금은 예술영화 상영관 등 전국적으로 10개 미만의 스크린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최은선 총괄팀장 / 영화공간 주안]
상영을 보장받지 못한 영화들이 가끔 가다 있잖아요. 그런 영화들을 위해서 열어드리는 편이에요. 인천에서도 단 한 곳, 그마저도 하루 한 번 있는 상영 시간을 맞춰야 하지만 관객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찾아옵니다.

[성원 / 영화 '약장수' 관객]
CGV 내가 자주 갔는데 없더라구요. 다 뒤져도 없어. 그런데 여기 뒤지니까 나와 (어렵게 오셨네요) 환승해 가면서..

어벤져스에 밀려 상영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것은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철민 / 영화배우]
우리가 정말 진하게 뜨겁게 신나게 만들었던 작품이 많은 관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 당하니까 너무 가슴 아팠죠.

서울의 한 대형극장에서의 상영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개봉 첫날 5번이었던 상영횟수는 차츰 줄어 개봉 일주일 째 되는 29일에는 두 번만 상영됐습니다.
그마저도 밤 12시 50분이나 아침 7시 50분 처럼 심야시간이나 이른 아침 시간대가 하루 한 번 씩 끼어있습니다.
횟수도 적고 관객이 없는 시간대에 영화가 배치되면서 관객점유율은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일주일간 관객 점유율은 7.8%, 그렇게 이 영화는 극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최광희 / 영화평론가]
관객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간대에 배치를 해 놓고 좌석 점유율이 낮다는 이유로 조기 종영을 한다든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영화들을 홀대하는 거죠.

지난 6일 새벽, 서울 광진구의 한 극장입니다.
한국 영화 <위험한 상견례2>가 상영중입니다.
새벽 1시 반 상영하는 영화에 관객은 3명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이 영화는 극장체인을 갖고 있는 대형 배급사를 끼고 있어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받아 지금까지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이리 저리 밀리며 관객 사각지대만 채우고 있습니다.

[정윤철 / 감독협회 부회장]
어떻게 해도 그건 관객이 들 수가 없는 시간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 낮은 관객 점유율이 나오기 때문에 바로 퇴출인거죠. 같은 200개의 극장을 줬다고 해도 극장 시간대를 나쁜 시간대로 주면 사실 50개를 준 거나 똑같아요.

개봉 전에는 예매율을, 개봉 후에는 관객점유율을 명분으로 사실상 극장 편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화의 운명.
이렇게 돈이 되는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줄 수 있고 그래서 짧은 시간에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한국 영화 시장의 특징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겐 매력적입니다.
어벤져스 2가 미국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하고 배우들이 개봉 전 한국을 찾아 홍보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최광희 / 영화평론가]
그들 입장에서는 슈퍼 하이웨이에요.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지.

대작 영화에 스크린이 몰리는, 이른바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영화 괴물이 다수의 스크린을 차지했던 2006년부터 불거져 온 문제입니다.
하지만 10년이 다 되어 가도록 문제가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배장수 /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한국 영화를 풍성하게 하고 완성도를 높인 건 인정해, 멀티 플렉스 많이 생겨서 관객들 이용 편리하게 한 점 인정해. 그런데 그로 인해서 악영향은 심화되고 있지 않느냐는 거죠. 빈익빈 부익부 심화되고 있지 않느냐는 거죠.

다양한 영화가 나란히 상영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풍경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이미 70년 전부터 법으로 상영과 배급을 분리시킨 미국은 극장과 배급사가 수입을 나눠갖는 비율을 변동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오래 틀면 틀수록 극장이 돈을 많이 가져가는 구조라서 우리나라처럼 개봉 초기에 한 영화를 몰아서 상영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프랑스는 아예 한 영화를 최대 2개 스크린까지만 상영하도록 정부가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자유 경쟁을 시키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쟈크 제르베 / 영화평론가]
자유경제라는 것은 사실 자유와 거리가 멀어요. 프랑스에서는 그걸 닭장속 늑대의 자유라고 말하죠. 늑대도 자유롭고 닭들도 자유로우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강자 앞의 약자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종말이 오는 거죠.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나서는 걸 기대하려 해도 극장의 스크린 독과점은 공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