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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더리더 김중식 화백

[예술의 안과 밖-한국영화계의 거장 이장호 감독] 구민회관 등 활용, 자유로운 배급 유통망 하루빨리 구축돼야

▲이장호 감독

한국영화계의 거장 이장호 감독이 대기업에 무릎을 꿇어야만 영화가 배급되고 투자가 이뤄지는 현 영화판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감독은 ‘더리더’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영화 유통구조를 장악하고 있어 의식 있는 영화들이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영화를 대기업에 맡겨 놓으면 영화의 겉은 화려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의 영혼은 망가지고 국민성도 잊어버리게 돼 속물적 국민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을 막으려면 대기업 손을 거치지 않아도 영화를 배급할 수 있는 유통망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지역 구민회관, 시민회관 등을 활용해 이런 유통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인터뷰 초반부터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이 감독의 표정은 비장감마저 감돌았다.

그는 숨고를 새도 없이 “대안으로 제시한 유통구조는 얼마든지 저예산 영화(독립영화)들을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또한 스타시스템도 대기업들이 만들어낸 이윤창출 방법 중 하나인데 스타가 주인공이면 안전하게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스타보다는 신인들과 주로 작품을 만들었다. 감독들의 의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문화계 ‘해방둥이’ 1945년생인데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된다.

난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모두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이다. 해방 전에 내려오셨기 때문에 난 서울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특히 우리는 45년에 태어나 ‘해방둥이’다. 그래서 그런지 늘 내 자신을 어리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사회는 나를 노인으로 취급한다(웃음). 우리 세대는 ‘해방’ ‘분단’ ‘전쟁’ ‘혁명’ 등 그 어떤 세대보다 심한 변화를 거치면서 살아왔다. 지난해에는 해방둥이 페스티벌을 해볼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의외로 해방둥이가 뭉칠 루트가 없는 것 같아 포기했다.


 

▲이장호 감독

광복 70주년 맞은 대한민국을 평가한다면.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국가인 일본이 독일처럼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됐어야 했는데 엉뚱하게 해방된 대한민국이 분단됐다. 분단으로 대한민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난 이런 희생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언젠가는 이런 고통을 겪고 고난을 겪은 것에 대한 열매가 틀림없이 있기 때문이다.

분단도 지금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것이 백두산을 가기 위해 중국 토문이란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불과 30~40m 건너편이 북한 땅인 곳이다. 도문까지 가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끝없이 펼쳐진 중국의 옥수수 밭을 봤다. 거대한 타워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도문에서 봐라본 북한 땅은 그냥 황폐한 땅이었다. 이때 문뜩 만약 분단이 안됐다면 부산에서 제주도까지 공산화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의 거대한 힘이 남한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는 게 희망적이라는 얘기다.

다행히 분단으로 남한만큼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으며 현재의 경제성장으로 통일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40여년 동안 한국영화를 이끌었다. 그 동안 한국영화가 발전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에 반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동아시아 3개국 사람들은 우수한 민족이다. 그중에서 한국은 지리적 환경이 외소한데도 첨단산업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제일 우수한 것 같다. 동의민족이 가무에 능하고 활 잘 쏜다는 얘기처럼 옛날에 이미 다 검증된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영화가 그렇다. 막대한 자본으로 할리우드가 독점했던 판타지 영화세계를 한국은 IT산업이 발전하면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따라잡았다. 여기에 일본처럼 예술적 능력까지 한국은 갖추고 있어 창의적인 판타지가 가능했다. 한국 민족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 연기자들은 과장된 연기를 주로 하는데 한국 연기자들은 리얼한 연기 즉 사실적인 표현을 잘한다. 이런 것들이 한국영화를 높여놓은 원동력이다.

아쉬운 점은 영화산업에 대기업들이 들어오면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특성상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투자한 만큼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데 이로 인해 한국영화들이 오락성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영화의 중요한 정신들이 자꾸 사라져가고 있다. 많은 영화감독들이 대기업의 행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별들의 고향’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현재 작품관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작품관은 수없이 변해왔다. 처음에는 뭐도 모르고 감각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와서 이런 의식이 없었다. 계기는 연예인 대마초사건 때다. 당시 활동정지 명령으로 오랫동안 일하지 못했다. 이 기간은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이 됐으며 동료들의 영화를 모니터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당시 깨달은 것은 ‘한국 영화가 현실을 그리지 않고 있구나. 현실에 외면하고 있구나’라는 것이다.

60년대 전만에도 ‘마부(1961)’ ‘박서방(1960)’ ‘오발탄(1961)’ 같은 리얼리즘 영화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나서 철저히 반공만을 내세우다 보니 한국의 현실을 반영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통제를 통해 한국의 가난한 모습, 공무원이나 군인들의 비리를 그리지 못하게 하니깐 현실을 왜곡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게 됐다. 당시에는 음악계·미술계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이 배당돼 정보뿐만 아니라 동향까지 조사하고 수집해 갔다. 영화판은 이런 통제가 더 심했다. 영화의 특성상 제작자의 목만 쥐면 영화가 통제되기 때문인데 나중에는 길들여질 정도였다. 당시 만든 영화만 봐도 얼마나 거짓말이 많은지 얼굴이 다 붉어진다.

이때 당시 결심한 것은 내가 다시 활동하게 되면 리얼리즘을 회복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시해사건 이후 다시 활동하게 되면서 ‘바람불어 좋은날(1980)’로 컴백을 알렸다. 지금 봐도 당시의 한국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젊은 영화감독(배창호, 장성욱, 박광수)들에게 리얼리즘의 붐을 일으켜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의 작품관은 또 바뀌고 있다. 현실 참여를 벗어나 영혼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간이 동물적으로 잘 먹고 잘 살고 그런 물욕에 대한 만족감으로 살려고 하는데 동물과 다른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다.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42년 영화인생 중에 27년 동안 영화를 못 만들었다. 결국 일한 게 13년밖에 안돼서 그런지 총 20편 밖에 제작을 못했다. 그래도 의미가 있는 것은 작년쯤 영상자료원에서 영화 100선을 뽑았는데 베스트 10위권 안에 내 영화 ‘별들의 고향(1974)’ ‘바람 불어 좋은날(1980)’ ‘바보선언(1983)’ 3편이 뽑혔다. 두편 이상 이름을 올린 감독이 없었는데 나만 유일했다. 이 영화들이 뽑힌 이유는 영화 안에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난 이 3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통스런 시련을 겪었다. 이것들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남아 에너지로 분출된 것이다.

‘바보선언’ 만큼은 좀 예외적인데 그 당시 영화 정책에 무리수가 많아 제작자들이 한국영화 제작을 기피하는 시기였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집권 세력인 전두환 정권이 강제로 영화를 만들게 했다. 1년에 매 분기마다 영화 1편을 만들어야만 외국영화를 수입할 수 있게 했는데 영화제작자들이 여기에 코가 껴서 될 수 있는 대로 한국영화는 돈 안들이고 빨리 만들어내는 짓들을 했다.

그때 난 영화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살하는 심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바보선